흥천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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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문화재

  •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樂寶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 | 1853년(철종4)
  • 조선 태조가 신덕왕후의 원찰로 창건한 흥천사의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이다. 철종 4년(1853)에 구봉 계장(九峰啓壯) 스님이 건축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측면 3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돌층계를 정면에 두고 기둥은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사이에도 전·후면에서는 각 2구, 측면에서는 각 1구의 공간포를 두었다. 정면 3칸에는 꽃살 창호를 달고 좌·우 뒷면은 판벽이다. 내부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가운데 우물천정을 두었다. 문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두 기둥 위에 돌출 되어있는 용머리 장식이 특징이다. 이 극락보전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으로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이므로 매우 귀중하게 평가받고 있다.

  •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 | 1855년(철종6)
  • 흥천사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철종 6년(1855)에 순기(舜猉)스님이 세웠으며, 고종 31년(1894)에 중수되었다.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좌우에 풍판을 달았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 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살미첨차가 판형(版型)으로 운봉(雲峰)을 조각하였다. 기둥 위에는 밖으로 용머리를 모양 있게 장식하였고, 안으로 용꼬리를 새겨 놓아 건물의 격을 높이고 있다.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무독귀왕·도명존자·시왕·판관·인왕상 등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뒷면 벽에는 지장보살의 모습이 담긴 불화와 시왕(十王)을 그린 불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에 모신 지장보살은 안락한 정토세계로 이끌어 주는 아미타부처를 가까이 모시는 협시보살이기도 하다. 흥천사 명부전은 옛 목조 건물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면서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장엄된 법당으로,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흥천사 목조여래좌상(興天寺 木造如來坐像)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3호
  • 흥천사에 전해오는 목조여래좌상으로 크기로 보아 『조선총독부관보』 1811호 (1933년 1월 24일)와 『봉은본말사지』(1943년)의 흥천사 목록에 보이는 1척 8촌의 아 미타불상으로 생각된다.
    허리가 길고 어깨가 넓은 신체 비례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전기 불상의 특징 을 보이며, 앉은 자세와 신체 비례, 세부 표현 등에서 1606년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 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19호), 동학사 아미타불상, 석가여래좌상 등과 비견된다. 조 성연대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양식적으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연구 자료로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 치가 있다.

  • 흥천사 목조보살좌상(興天寺 木造菩薩坐像)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4호
  •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조선후기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보살상보다 머리가 크고 어깨가 좁은 편이며,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은데, 조선전기 유행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양식적 특징과 복장물로 발견된 묘법연화경이 16세기 간행된 점을 미루어 보아 조성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크기로 보아 『조선총독부관보』 1811호(1933년 1월 24일)와 『봉은본말사지』(1943 년)에 기록된 대세지보살상(3척 7촌)으로 생각된다. 흥천사 목조보살좌상은 보존 상 태도 완전하고, 양식상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보아 한국불교조 각사 연구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바이다.

  • 흥천사 명부전 석조지상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興天寺 冥府殿 石造地藏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5호
  • 명부전에 봉안된 총 27구의 불상으로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무독귀왕, 도명존 자를 협시로 한 지장삼존상, 시왕상 10구, 귀왕상 2구, 사자상 2구, 판관상 2구, 금 강역사상 2구, 동자상 6구이다.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등은 석재로 조성되었고, 사자 상과 금강역사상은 흙으로 조성되었다.
    흥천사 명부전의 불상들은 조성발원문이 없어서 조성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세기 후반의 조각승 승호와 그 계보가 만든 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여 17세기 후반 영남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총독부관보』 1811호(1933년 1월 24일)와 『봉은본말사지』(1943년)에 흥천사 지장삼존상과 시왕상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흥천사 명부전 불상은 보존 상태도 완 전하고, 17세기 후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

  •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 및 복장유물
    (興天寺 木造觀音菩薩三尊像 및 腹藏遺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6호
  •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701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와 조각가가 확인되는데, 원래 전라북도 임실 사자산 적조암에서 제작한 것을 언젠가 흥천사로 옮긴 것이다.
    용왕과 선재동자를 협시로 한 삼존 형식은 수월관음도에 적지 않게 보이지만 조각의 경우에는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1655년, 조각승 혜희),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삼존불감(경남유형문화재 제575호), 운흥사 목조불감(1670년)을 제외하면 그 예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 연구에 큰 의미를 지닌다.
    복장유물은 후령통, 주서와 묵서 다라니 등 총 9건(633점)으로, 수습한 불서들은 임란 이후 간행되었고, 현전본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일괄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으로 한다.
    흥천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과 복장유물은 조성시기가 명확하고 그 예가 드문 관음·용왕·선재동자의 삼존상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상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므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 흥천사 아미타불도
    (興天寺 極樂寶殿 阿彌陀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7호 | 1867년
  • 19세기 후반 서울 지역에서 보이는 경상도 화풍이 반영된 수준 있는 후불도 라는 점에서 가치뿐만 아니라 지역 간의 교류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 불화이다. 또한 시주자로 당시 왕실 여관인 상궁(상궁천씨, 조씨, 안씨 등)이 참여하여 고종과 민비의 안녕과 무강을 기원하며 제작된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나타나는 왕실과 사찰간의 후원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불화이다.

  • 흥천사 지장시왕도(興天寺 地藏十王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8호 | 1867년
  • 19세기 후반 서울지역에서 제작된 지장시왕도 형식 가운데 선행되는 사례이자 모본이 되는 작품이다. 본존인 지장보살이 보주를 두 손으로 받들고 지장보살 석장을 선악동자가 들고 있는 새로운 도상이 나타난다. 안정된 구도, 19세기 후반의 화풍이 반영된 존상표현과 홍색을 기반으로 녹색과 청색이 대비를 이루는 색채의 구사력, 세부 문양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표현 등이 조화를 이루어 수준 있는 화격을 유지하고 있다.

  • 흥천사비로자나삼신괘불도 및 괘불함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2호 | 1832년
  • 흥천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는 금어(金魚)·화담 신선(華潭 愼善) 등 17인의 화승이 1832년(순조 32)에 제작한 불화(佛畵)이다. 순조와 순조비, 효명세자의 빈인 빈궁(후에 조대비) 등의 축원을 위해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와 부마, 순조의 장인 김조순 등 종친이 대거 시주에 참여해 제작한 왕실발원 불화이기도 하다. 이 괘불도는 서울 지역 사찰에서 보관하고 있는 괘불 중에서도 연대가 빠른 편이며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등 비로자나삼신불을 화면 가득 묘사하고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했다. 서울시에서는 괘불도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해 괘불도와 함께 괘불함과 복장물 등을 일괄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

  • 흥천사대방광원각수다리요의경판(60판)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板)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9호 | 2016년 2월 18일 지정
  • 부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원각묘심(圓覺妙心)을 깨닫기 위한 수행 방법을 설명하는 이 경전은 당나라 때 북인도 승려인 불타다라가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대방광원각경’, ‘원각경’ 등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다. 이 경판은 3권 60판(2판 결장)으로 함허당 기화(涵虛堂 己和 1376~1433)의 주석본을 새긴 것이며 고종 19년(1882)에 왕실과 신도들의 시주로 감로사(甘露社)에서 간행한 목판이다. 이 목판의 인본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등에 소장되어있으나 드물다. 2장의 결판이 있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함허당 기화의 주석으로 현전하는 경판으로는 유일하고 희소성면에서 가치가 있다.

  • 흥천사 현황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380호 | 2016년 4월 7일 지정
  • 사람이 죽어서 3일 후에 받는 심판을 주재하는 현왕여래(現王如來)를 중심으로 묘사한 불화. 흥천사 극락보전 안의 현왕단(現王壇)에 봉안되어 있다. 현왕은 사람이 죽어서 3일 만에 심판을 받는 명간교주로 신앙되고 있는데 명부와 세간을 오가므로 명간교주(冥間敎主)라고도 부른다. 보현왕여래의 화신이며 명계(冥界)에 있을때는 염라대왕이라고 부르고 명부를 떠나 현세에 올 때의 이름이 현왕이다. 흥천사의 현왕탱화는 중앙에 현왕여래가 있고 광배(光背)의 좌우에 동자상(童子像), 바로 아래쪽 좌우로 좌우보처인 대륜성왕(大輪聖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에 판관(判官)과 녹사(錄事)가 시립하고 있다.

  • 흥천사 약사불도
    (藥師會上圖)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66호
  • 약사전에 모셔져 있던 약사여래 후불탱화. 약사여래는 중생의 온갖 병고를 치유하고 모든 재난을 제거하고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부처님이다. 본존인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부처님을 중심으로 협시보살인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이 모셔져 있고 제자들과 사천왕의 호위를 받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興天寺 極樂寶殿 極樂九品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5호
  •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상 우측에 봉안된 이 극락구품도는 화면을 9개 구획으로 나 누고, 그 구획 안에 구품의 내용을 도해한 형식으로 이러한 형식의 극락구품도는 화 계사(1886), 백련사(1899), 도선사(1903), 봉원사(1903), 수국사(1907), 고양 흥국사 (19세기) 등 서울·경기 수도권지역에 남아있다. 고려시대 관경도에서 이어져 변모되 어 새롭게 대두된 극락구품도는 19세기에 유행한 도상으로 당시 저명한 화승인 대허 체훈(大虛體訓),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등이 참여한 뛰어난 작품이 며, 특히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19세기)와 유사한 작품으로 비교되는 중요한 자료 이다.
    흥천사 소장의 왕실발원 신중도(1885)의 제작한 참여한 화승이 이 극락구품의 제작 에도 참여하고 있어, 극락구품도 역시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경기 지 역의 극락구품도와 비교되는 자료로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바이다.

  • 흥천사 극락보전 도량신도(興天寺 極樂寶殿 道場神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6호
  •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도량신도로서 도량신은 <화엄경> 약찬게에 등 장하는 화엄신중의 하나이며 도량의 더러움을 없애는 신이다.
    도량신을 단독탱화로 조성·봉안한 매우 드문 예로, 흥천사의 도량신도는 단독탱화 로 조성된 도량신도의 대표적 작품으로 19세기 말 도량신 신앙의 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며, 서울·경기지역의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했던 대(태)허당 체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885년 조성된 극락보전 신중도와 증명비구, 화승, 시주 등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1885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문화 재의 가치가 인정되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 흥천사 극락보전 신중도(興天寺 極樂寶殿 神衆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7호
  • 군도형식의 신중도로서,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제석·범천 등 천부세계를 표현하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부를 나타내고 있다. 남아있는 화기 내용 으로 보아, 광서 11년인 1885년 대허체훈(大虛體□訓)이 책임화승을 맡고 보조화승으 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활약했던 서울경기지역의 대표적 화승 중 한명인 비구 긍법(比丘肯□法)에 의해 조성된 왕실발원 불화로 짐작된다. 참여 화승들이 만세루에 봉안된 1890년 작 신중도 제작에도 동참하였으며 두 신중도가 공간배치 및 도상이 거의 일치하고 있어 두 불화의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흥천사 천룡도(興天寺 天龍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8호
  • 흥천사 천룡도는 위태천과 천룡팔부를 함께 그린 것으로서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 안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 위태천이 합장하고 서 있으며 천녀와 일월천자, 여러 신중 들이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인물표현에 음영법이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붉은색 이 많이 사용되고, 일부 화려한 금박이 사용되어 19세기 서울·경기지역 불화의 특색 을 보여준다. 화기에 의하면 1898년 용담(蓉潭)이 초본을 그렸다.
    신중도 중 천룡도 형식은 예가 많지 않은 가운데,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의 천룡 도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

  • 흥천사 만세루 아미타불회도
    (興天寺 萬歲樓 阿彌陀佛會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9호
  • 만세루에 봉안된 아미타불회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보살, 십대제자, 사천왕 등 이 배치되어 있으며 상궁들이 시주한 왕실발원 불화로 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 불화는 수화승 긍조(亘照)를 비롯하여 만파정익(萬波定翼), 혜산축연(慧山竺 衍), 보암긍법(普庵肯法) 등 주로 19세기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 던 화승들이 조성하였다. 조성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890년 제작된 만세루 의 신중도에 수화승 긍조 등이 참여한 바, 만세루 신중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 정된다. 저명한 화승인 긍조가 수화승으로 참여한 왕실발원의 불화로서 서울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흥천사 만세루 신중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0호
  •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제석범천 등 천부세계를 나타내고, 하단에는 천 룡부를 표현하였다. 극락보전에 봉안된 1885년 조성의 신중도와 채색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도상이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이 신중도의 조성에 참여한 화승(碧㶏 □誌□閑, 比丘肯□法)이 극락보전 신중도 조성에도 참여한 사실에서 관련성을 찾을 수 있 다. 화면 하단의 화기 내용으로 보아 광서 16년인 1890년 긍조(亘照)가 수화승을 맡 았다. 화기에 의해 조성연대, 봉안사찰, 조성화승이 명확하며, 동참화승의 기록을 통 해 극락보전 신중도와의 영향관계 및 화풍 파악, 19세기 후반 서울·경기지역의 신중 도 도상 비교 등을 위한 자료적 가치가 있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바이다.

  • 흥천사 만세루 제석천도(興天寺 萬歲樓 帝釋天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1호
  • 제석천을 중심으로 천부세계를 표현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의 신중도로, 화면 중앙에 제석천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천부중과 여신 등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 화기가 있으며, 조성연대, 봉안처, 화승, 시주자 등을 기록하였 다. 광서 16년인 1890년 도편수 ‘긍조(亘照)’가 책임화승을 맡고 ‘정익’과 ‘성전’이 참여하였다.
    조성연대와 봉안사찰, 조성화원 등이 명확하며, 19세기 후반 한성부과 경기도 지 역의 제석천 중심의 신중도 도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바이다.

  • 흥천사 도량장엄번(興天寺 道場裝嚴幡)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2호
  • 도량장엄용 의식불화인 오여래도 5점, 사보살도 4점, 팔금강도 7점(8점 중 1점 결실) 등 총 16점이다.
    화기가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지만, 얼굴의 형태와 채색, 문양 등에서 1898년 조성된 흥천사 극락보전 천룡도의 양식과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음영법을 사용하는 등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의 불화양식을 보여주며, 19세기 말 흥천사의 불교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

  • 흥천사 조왕도
    (조왕도 서울시문화재자료 제71호)
  • 1938년 보응문성(普應文性)스님이 용왕상을 그려서 모신 탱화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은 두 폭의 면을 가로로 잇대어 바탕으로 삼았다. 불화는 부분적으로 찢김, 안료 탈락, 촛농 등의 오염 등이 있지만 잘 보존된 편이다.
    가운데에 용왕상이 그려져있고 좌보처는 선녀머리형에 과일을 든 여인이 있고, 우보처는 도끼를 든 남자가 서 있다. 세 명의 인물 중 관을 쓴 용왕님을돋보이게 그렸다. 용왕님이 쓴 관 뒤쪽에는 광배(光背)를 표현함으로써 중요성을 부각하여 표현하였다. 세 명이 뒤쪽 벽면에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려지고 파도의 위쪽으로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해와 달의 바깥 쪽으로는 노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흥천사 시왕도
    (시왕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423호)
  • 흥천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명부시왕상을 그린 탱화이다.
    1855년경에 대허체훈(大虛體訓)스님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시왕탱화의 표현방식은 19세기 서울에서 유행되던 형식이다.
    화면의 상단부에는 시왕의 모습을 중심으로 심판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하단에는 지옥장면이 펼쳐진다. 성곽을 두르고 병풍을 친 내부 공간 안에 시왕과 그 권속들이 그려진다. 시왕은 계단이 있는 높은 단 위에 앉아 있아 심판하는 모습이며, 그 옆으로 판관‧녹사‧사자‧옥졸 등 명부세계의 인물들이 시왕의 심판을 돕는다. 하단에는 성곽, 나무 등을 이용하여 화면 위쪽과 구분하여 지옥세계를 그렸다.

  • 흥천사 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興天寺 石造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74호)
  • 현재 노전에 봉안된 석조불상은 세 구이며, 석조약사여래좌상(石造藥師如來坐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조아미타여래좌상(石造阿彌陀如來坐像)과 석조지장보살좌상(石造地藏菩薩坐像)이 있다.
    1847년에 조성된 약사불 화기(畵記)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지장보살 주산대왕 석상 4위를 개분중수’한다는 기록과, 2016년에 실시된 복장 조사에서 1853년에 작성된 [만월전 개분원문]이 발견되어 삼존이 같이 봉안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음, 그러나 기록에서 언급한 세 구가 현재 노전에 봉안되어 있는 약사불, 아미타불, 지지장보살임을 입증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본존인 석조약사여래좌상 내부에서 1829년에 금어(金魚) 영운의윤(影雲義玧), 관허정관(觀虛定官), 편수(邊手) 지성(智性)이 조성했다는 조성발원문이 조사되었으므로, 1829년의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히 드러난 석조약사여래좌상만을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였다.